"이런 억지가 어딨어요? 말이 안되는거잖아!"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구슬을 가져간 건 말이되고?"
다들 아시겠지만 올 가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주인공 기훈이 서바이벌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논리에만 매몰되어 있고, 시청자도 기훈의 관점에 동일시되어 있던 순간, 일남 할아버지의 허를 찌르는 이 대사는 저뿐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 모두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6일 SK하이닉스의 실적 발표를 지켜 보는데 갑자기 '오징어 게임'의 이 장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올 여름부터 국내 증시는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로 미국 증시보다 더 길고 깊은 조정을 받았습니다. 연초 10만원을 눈앞에 두었던 삼성전자는 한 때 '6만전자'가 되었고, 15만원을 넘나들던 하이닉스는 10월 들어 9만원 선마저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간 인플레이션 우려, 테이퍼링 이슈, 중국 헝다그룹 문제들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조정 폭이 좀 깊다 싶어 억울한 기분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슈들을 딛고 최근 다시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미국 증시와 비교해 볼 때도 전고점에서 아직 -10%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증시는 반도체 섹터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매크로 리스크에 대한 우려보다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26일 SK하이닉스가 3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매출은 11.8조로 역대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 이익률은 무려 35%를 넘겼습니다. 그간의 반도체 가격 하락 우려로 국내 증시의 조정 폭을 더 키웠던 반도체 업종이 오히려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것입니다. 물론 반도체 가격 하락이 실적에 크게 반영된 분기는 아니기도 하고, 하락이 계속 진행 중이라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회사 측은 4분기에도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내어 놓았고 어느새 주가도 저점에서 10%이상 올라 왔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기술적 반등은 제한적이고 연말까지의 시장이 조정 혹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짝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여전히 -30% 가량 하락한 주가를 놓고도 재고 문제 혹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설명하고 있고, 향후 반도체 가격 하락이 좀더 진행될 경우 반등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때문입니다. 현재 실적이냐 향후 전망이냐, 가격 레벨이냐 부진한 업황이냐, 기술적 반등이냐 추세 전환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우리가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이런 억지가 어딨어요? 반도체 가격이 더 하락할텐데 주가가 반등하는 건 말이 안되는 거잖아!"
"그럼,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분기에 주가가 -40% 빠진건 말이 되고?"
확실한 것은 경험상 현재 주가를 설명하는 논리에 매몰되어 있으면 상승이든 하락이든 반전의 타이밍을 놓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추가 상승 혹은 하락의 논리가 남아 있는데 생각과 달리 움직이면 이를 바꾸고 인정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이는 투자가 어려운 이유이고 예측보다도 대응이 중요한 까닭입니다.